철학사 강의 -
2012.2 - 2012.11
1강: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사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철학사를 읽는 이유
2강: ‘축(軸)의 시대’와 사상사적 전환, ‘대우주(大宇宙)-소우주(小宇宙) 모형’의 의미
3강: 철학/신화/종교/과학, 희랍철학의 원류들과 고유한 형성
4강: 희랍철학의 전개, 자연철학자들, Thoukydides의 의의
5강: 근본범주들, 형이상학: 자체(kath’auto)에 대한 사유, 상대적 nomos와 절대적 nomos
6강: Sokrates: 방법론, 적극적 주장, Platon과의 구별
7강: Sokrates의 성취와 한계, Platon의 계승, Idea론[形相論]
8강: Platon의 ‘동굴의 비유’: 고개돌림(periagōgē), 오름(anabasis), 내려가기(katabainein),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통치자’와 실정성(Positivität)
9강: Platon의 ‘좋음’의 형이상학: 좋음(agathon), 내 것(oikeion), 불멸(athanathon), ‘eros의 사다리’
10강: Sokrates와 Alkibiades(«향연», 212c-222b)
11강: Aristoteles의 형상내재론(形相內在論), 학문의 분류: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
12강: Aristoteles의 운동(kinesis)개념: dynamis(뒤나미스, 잠재태), entelecheia, energeia(엔텔레케이아, 에네르게이아, 현실태)
13강: nous철학의 종언, Epikouros의 철학: tetrapharmakon, Lucretius의 철학시(哲學詩), Stoa철학: Marcus Aurelius의 «명상록», 18세기 이신론(理神論)
14강: 세계(Welt)/ 세계상(Weltbild)/ 세계관(Weltanschauung), 인도의 종교들: 힌두교, 자이나교
15강: 인도불교, 중국 사상의 기본개념, 중국의 종교들: 유교, 도교, 불교
** 텍스트: «세상의 모든 철학», 이론과실천, 2007.
인도불교(印度佛敎)
팔정도(八正道)
계율(戒律):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嶪), 정명(正命)
선정(禪定):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지혜(智慧):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嶪), 정명(正命)을 되풀이하여 완성
중국
유교(儒敎)
유가(儒家), 유학(儒學), 덕교(德敎), 명교(名敎), 예교(禮敎), 정교(政敎)
황로(黃老: 황제(黃帝)와 노자(老子)), 법술(法術)
도교(道敎)
태평도(太平道), 오두미도(五斗米道)
명복의상산(命卜醫相山)
태상노군(太上老君)
당대(唐代)의 사마승정(司馬承禎), 좌망론(坐忘論)
송대(宋代)의 주돈이(周敦頤, 周濂溪)의 주정(主靜), 주희(朱熹)의 거경(居敬)
불교(佛敎)
화엄경(華嚴經) — 화엄종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이판승(理判僧)/사판승(事判僧)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또는 법화경) — 천태종(天台宗)
제법실상(諸法實相)
전쟁을 지휘하는 것과 권력을 운용하는 것, 우리는 막연히 이 둘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예측하면서도, 이 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 — 즉, 정치적 전략과 같은 단순한 은유의 단계를 넘어서 둘을 각각 동일한 도식에 따라 해석하는 것 — 은 보통 망설이거나 꺼린다. 즉, ‘조작manipulation’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조작 이론에 관해서는 생각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한다.
그런데 중국의 고대 사상가들은 이를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에서 의례적.도덕적 관점의 주장이 집요하면 집요할수록, 고대 말기의 극한적인 사회적.정치적 위기의 맥락에서 조작 개념이 야기한 반응은 그만큼 더 강렬하고 급진적이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 당시의 세勢라는 공통적 ‘핵심’은 병법과 정치를 그 심층에서 결합시키고 있었다.
…
게다가 전쟁에서든 정치에서든 실제로 작동되는 장치는 동일한 기능적 특성을 나타낸다.
…
그러나 병법가들 내지 전제주의 이론가들과 도덕주의자들은 세라는 용어의 용법에 관해서는 점점 더 명확하게 서로 대립하게 되지만, 그들 간의 경쟁적 논쟁의 기초가 되는 논리 속에서 서로 합쳐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성향을 통해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의 우월성을 현실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의례 그 자체는 모든 중국 문화, 특히 유교적 도덕주의의 기저에서 하나의 순수한 장치로서 간주해야만 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지음), «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한울, 2009.
François Jullien, La propension des choses: Pour une historie de l’efficacité en Chine(1992)
‘만년필을 쓰면 뭐가 좋습니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해보자. 이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할 질문이다. 이 맥락을 알아내는 게 조금 어렵기는 하다.
만년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
‘만년필 하나 사서 써볼까 말까’를 되풀이 하다가 사서 써보면 뭐가 좋은지 알아내지 못한채 돈만 버리게 될까 걱정되서 물어보는 경우.
만년필 한 자루 사서 좀 써봤는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기에 물어보는 경우.
셋 중의 하나는 겁쟁이다. 겁쟁이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다.
—
‘만년필을 쓰면 뭐가 좋습니까?’라는 질문은 ‘철학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번역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단 단위 요약을 하고 전체 요약을 하고 5단락으로 요약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됩니까?’, ‘이 책을 사서 읽은 다음에는 무엇을 읽으면 됩니까?’ 등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이 사전事典은 중국의 사상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각 개념마다 통사적인 해설을 시도했다. 이런 의미에서는 사전辭典으로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제도와 사상을 포함하고 있고 각 분야에 걸쳐 체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사전事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中國이란 어떤 세계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연속체로서 자기인식이 되어온 ‘중국’이라는 역사 개념이다. 때로 그것은 지리 개념이고 때로는 정치 개념이기도 하며 문화 개념이기도 한데, 그것은 고정화된 영역이나 추상화된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변동적 유동적 개념이다. 민족이나 언어로 말하면 다민족 다언어적이며, 문화로 치면 혼효混淆적이고 다원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관념으로 공유되고 연속체로 인식되고 관습으로 계승되어온 ‘중국’적인 관념과 제도가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예를들면 그것은 천명天命.역성혁명易姓革命의 사상이고 천天의 통치 이념이고 제사의 예제禮制이며 혹은 조공朝貢 제도라는 화이華夷와 예禮의 국제 질서요 천하 개념 따위다. 이러한 ‘중국’이라는 공동 의식 아래 문헌 사료 속에 정치.제도.사회.사상.윤리.습속 등의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 사상事象.사적事蹟.관념의 총체를 여기서는 역사 개념으로서의 중국이라고 부른다.
…
이 사전은 객관적 역사 사실이나 실재했던 역사 인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주관적 사유로서의 철학 개념이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고 그 철학 개념을 낳은 정치.경제.사회 같은 역사적 배경까지 파고 들어가고자 의도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사상이다. 또한 그 사상을 정태적으로 특징짓지 않고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동태적 존재로 파악하며 또 그것을 지식인의 세계뿐만 아니라 민중 세계의 종교.일상 윤리.생활관습.사회 통념 등으로 파악하면서 그 총체를 ‘사상 문화’라는 단어로 표현코자 의도한 것이다. [저자서문]
미조구치 유조, 마루야마 마쓰유키, 이케다 도모히사(엮음), 김석근 외(옮김), «중국사상문화사전», 책과함께, 2011.
溝口雄三, 丸山松幸, 池田知久, 中國思想文化事典(2001)
Feed where thou wilt, on mountain or in dale:
Graze on my lips, and if those hills be dry,
Stray lower, where the pleasant fountains lie.
맘 내키는 곳 어디서라도 풀을 뜯어요. 산에서나 골짜기에서나.
내 입술에서 풀을 뜯어요. 그리고 그 언덕들이 말라 있으면
좀 아래를 헤매어 봐요. 상쾌한 샘물이 거기 있을테니.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 232-234.
William Shakespeare, Venus And Adonis(1592-3)
Stanley Wells, Shakespeare: For All Time(2002)
스탠리 웰스(지음), 이종인(옮김),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것», 이끌리오, 2007.
마키아벨리의 이른바 ‘군주론’(Il principe)의 제목은, 이 책이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않은 까닭에, 저자가 붙인 것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12월 10일 자로 친구인 프란체스코 베토리(Francesco Vettori)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단테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공부한 바를 잡아두지 않으면 아무런 지식도 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고대인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바를 기록해서 ‘군주국에 관하여(De Principatibus)’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opusculo)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생각에 가능한 한 깊이 탐구하여 군주국의 정의, 군주국의 종류, 군주국의 획득과 유지 방법 및 상실 이유 등의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 책자는 특히 새로운 군주에게는 환영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군주론’이라 부르는 책은 ‘군주국론’이라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처음 10권에 관한 논의, 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에서 이 책을 언급하는데, 이탈리아 어로 ‘principati’(2,1)라 하기도 하고, 라틴어로 ‘de principe’(3,42)라 하기도 하며, “논문(trattato)”(3,19)이라 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가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론한 단테의 “말”은 «신곡» 천국편 5곡 40-42행이다: “내가 설명하는 것에 그대의 마음을 열고 / 그 안에 집중하시오. 간직하지 못하고 / 이해한 것은 지식이 되지 않으니까요.”
‘군주론’의 제목을 라틴어로 하는 것은 헌정사와 각 장의 제목들이 라틴어로 쓰여졌다는 것에 상응한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최고행정청(signoria) 제2서기국의 서기관으로 근무했는데 외교와 군사를 다루는 부서였으므로 라틴어에 능숙했을 것이다. 그가 «로마사 논고»에서 이 책을 “논문”이라 부른 것은 이 책의 성격을 스스로 규정한 것이다. 라틴어는 학계의 언어였으므로 표제를 라틴어로 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라틴어를 사용하던 또다른 집단인 교회는 마키아벨리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다.
‘헌정사’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메디치 전하께 드립니다”(NICOLAUS MACHIALELLUS MAGNIFICO LAURENTIO MEDICI IUIORI SALUTEM)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최근의 정세와 관련된 오랜 경험(lunga experienzia)과 고대 역사를 꾸준히 공부하여 얻게 된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에 대한 지식(cognizione)”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로마사 논고»는 “세상사에 대한 오랜 경험과 착실한 독서를 통해… 알고 얻게 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가진 지식은 “세상사”, 즉 ‘인간사’(res humanae)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것들을 작은 책자(piccolo volume)”에 담아 로렌초에게 바친다. 이 책은 “작은” 것이기에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전해줄 수 있다. 이 책은 “작은” 것이기에 “과장”도 있을 수 없고, “기교나 피상적인 장식”도 전혀 없다.
“지식”을 가진 마키아벨리는 스스로를 “낮고 비천한 사람(uomo di basso et infimo stato)”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백성의 성격”과 “군주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그는 ‘본성(natura)’을 알고 있는 것이다. ‘헌정사’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전하, 이 작은 선물을 제가 드리고자 하는 뜻을 헤아리시어 부디 받아 주십시오.” 마키아벨리는 로렌초에게 “간직”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8. ‘한 나라’를 지키는 참다운 방책과 교육
«국가», 421d-427c.
수호자들은 공동의 일에 집중함으로써 보편적인 관심사인 지혜로 올라설 준비를 한다. 그들은 사적인 것을 폐기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일꾼(장인)들”에게도 유사한 제한을 요구한다. 그는 아데이만토스의 사유재산 옹호를 공동체 전체와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논박해 들어간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재산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빈곤(penia)과 부(ploutos)로 인해서 기술의 산물들도 못해지지만, 상인들 자신들도 더욱 못해진다.” 부로 인해서는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neōterismos)”이 초래되고, 빈곤으로 인해서는 “변혁에 더하여 노예 근성(aneleutheria)과 ‘기량의 떨어뜨림’(kakoergia)”이 초래된다.
여기서 아데이만토스는 현실적인 난점을 제기한다: “전적으로 그렇긴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나라가 재물을 갖지 못했을 경우에, 특히 크고 부유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국제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국내정책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공동체 내부의 훌륭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가난한 나라와 두 개의 부유한 나라가 싸울 경우를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두 나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술을 세워야 하며, 이 경우 부유한 나라는 전술, 즉 외교 보다는 싸움 자체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전술에 대한 것보다는 권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외교를 통해 부유한 나라와 동맹을 맺어 싸우는 방책을 제시한다: “이를 들은 사람들이 개들과 한편이 되어 살찌고 연약한 양들과 싸우기 보다도 튼튼하고 힘센 개들을 상대로 싸우는 쪽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소크라테스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단결이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더 큰 명칭으로 불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나라’지만 사실은 “’수많은 나라’이지 ‘한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들은 분열되어 있다. “거기엔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두 개의 나라, 즉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자들의 나라”가 있는 것이다. ‘한 나라’를 ‘수많은 나라들’— 이는 ‘정파(政派)’로 불러도 될 것이다 — 로 분열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은 ‘부와 빈곤’이다. 정파 분열이 없는 ‘한 나라’는 “헬라스 인들 사이에서도 또는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공동체 내부의 단결을 염두에 두면 나라의 규모도 규정된다: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로 머물러 있게되는 한도까지, 즉 그 정도까지 키우되, 그 이상은 키우지 않는 걸세.”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공동체가 “충분하고 하나인 것이도록 모든 방법을 다해서 수호해야” 함을 주장하며, 그것을 위해서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으로 의도한 바는 다른 시민들도 저마다 타나난 성향에 따라 이 한 가지 일(기능: ergon)에 개개인이 배치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각자가 자신의 한 가지 일에 종사함으로써 각자가 여럿 아닌 한 사람으로 되도록 하고, 또한 바로 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 전체가 자연적으로 여럿 아닌 ‘한 나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네.”
소크라테스의 ‘기능’중심주의, 전문가주의는 ‘한 나라’, 즉 내부의 분열이 없는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고 위함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다시 한번 “교육(paideia)과 양육(trophē)”을 강조한다. 이 교육과 양육은 앞서 언급되었던 시가교육, 체육교육 등과는 다른, 삶의 세부적인 항목들을 포함한다. “우리가 지금은 제쳐두고 있는 많은 다른 것까지도, 이를테면 아내의 소유나 혼인 또는 출산 등, 이 모든 걸, 속담에 따라, 최대한으로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된다는 것.”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koina ta philōn)은 449c에서 다시 거론된다]
아데이만토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전적으로 수긍하면서(“저 또한 그렇게 믿는 사람들 속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세부적인 항목 만들기에 가담한다. 그들이 관여하는 것은 다양하다. “체육 및 시가와 관련해서 기존의 질서와 어긋나게 ‘혁신하는 일’(neōterizein)”, 특히 “’가락(법: nomos)의 어김(paranomia)’”에 유념해야만 한다. ‘가락’을 어기는 일이 생겨나면 그것이 “성격과 관행(관례: epitēdeumata)”에 스며들고, “이게 커져 나와서는 상호간의 계약들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이 계약들에서… 그야말로 무엄하게도 법률과 정체(政體)를 향해서 옮겨가서는, 마침내는 공사(公私)간의 모든 걸 뒤집어 엎기에 이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의 핵심을 “준법적인(ennomos) 놀이”에 두되, 이는 “말로나 문자로나 입법화”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시장 상거래의 세칙(細則)”, “치안 조례와 항만 조례”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종류의 것으로 참된 입법가가 수고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관습적으로 처리할 일들이다.
소크라테스와 아데이만토스는 수호자들의 교육과 양육에 관한 논의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법령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하며 으뜸가는 것들”을 논의한다. 그것은 “신전들의 건립과 제물들, 그리고 그 밖에 신들과 수호신들 및 영웅들에 대한 섬김… 죽은 자들의 매장과 저 세상에 있는 자들이 ‘심기가 좋은 상태에 있도록’ 이들에 대해 해야만 하는 봉사”이다. 이러한 섬김과 봉사는 “’조상 전래의 해설자(조언자, 판단자)’(pratrios exēgētēs) 이외의 다른 어떤 해설자를 따르지도, 또한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아폴론 신이 제시된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를 시작할 때 벤디스(Bendis) 여신의 축제에 ”축원과 구경”을 하러가서 “트라케 인들이 지어 보인 행렬”을 “근사”(327a)하다고 하였으나 그가 세우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행렬을 구경하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
심적 상태로서의 용기[thymos]의 가치는 참으로 절대적인 궁극목적, 국가의 /주권(主權)/에 놓여있다 — 용기의 산물로서의 이러한 궁극목적의 /현실성/은 개인적 현실성의 포기를 자신의 매개작용으로 삼는다… 현대 세계의 원리, 즉 /사상(思想)/과 /보편적인 것/은 용기에 높은 형태를 부여하였거니와, 용기의 외화(外化)는 더 기계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특수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의 /지절(枝節)/[의 행위]로 나타난다 — 더욱이 용기는 개별적 인격이 아니라 적대적인 전체 일반을 향하며, 그에따라 개인적 용기는 비인격적 용기로 나타난다. 그런 까닭에 저 원리는 /총기(銃器)/를 발명했으며, 이러한 우연적이지 않은 무기의 발명은 용기의 단순한 인격적 형태를 추상적인 용기의 형태로 전환시켰다. — 헤겔, «법철학», §328
2012.04.24, 창덕궁 담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