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 나라’를 지키는 참다운 방책과 교육
«국가», 421d-427c.
수호자들은 공동의 일에 집중함으로써 보편적인 관심사인 지혜로 올라설 준비를 한다. 그들은 사적인 것을 폐기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일꾼(장인)들”에게도 유사한 제한을 요구한다. 그는 아데이만토스의 사유재산 옹호를 공동체 전체와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논박해 들어간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재산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빈곤(penia)과 부(ploutos)로 인해서 기술의 산물들도 못해지지만, 상인들 자신들도 더욱 못해진다.” 부로 인해서는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neōterismos)”이 초래되고, 빈곤으로 인해서는 “변혁에 더하여 노예 근성(aneleutheria)과 ‘기량의 떨어뜨림’(kakoergia)”이 초래된다.
여기서 아데이만토스는 현실적인 난점을 제기한다: “전적으로 그렇긴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나라가 재물을 갖지 못했을 경우에, 특히 크고 부유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국제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국내정책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공동체 내부의 훌륭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가난한 나라와 두 개의 부유한 나라가 싸울 경우를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두 나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술을 세워야 하며, 이 경우 부유한 나라는 전술, 즉 외교 보다는 싸움 자체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전술에 대한 것보다는 권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외교를 통해 부유한 나라와 동맹을 맺어 싸우는 방책을 제시한다: “이를 들은 사람들이 개들과 한편이 되어 살찌고 연약한 양들과 싸우기 보다도 튼튼하고 힘센 개들을 상대로 싸우는 쪽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소크라테스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단결이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더 큰 명칭으로 불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나라’지만 사실은 “’수많은 나라’이지 ‘한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들은 분열되어 있다. “거기엔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두 개의 나라, 즉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자들의 나라”가 있는 것이다. ‘한 나라’를 ‘수많은 나라들’— 이는 ‘정파(政派)’로 불러도 될 것이다 — 로 분열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은 ‘부와 빈곤’이다. 정파 분열이 없는 ‘한 나라’는 “헬라스 인들 사이에서도 또는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공동체 내부의 단결을 염두에 두면 나라의 규모도 규정된다: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로 머물러 있게되는 한도까지, 즉 그 정도까지 키우되, 그 이상은 키우지 않는 걸세.”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공동체가 “충분하고 하나인 것이도록 모든 방법을 다해서 수호해야” 함을 주장하며, 그것을 위해서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으로 의도한 바는 다른 시민들도 저마다 타나난 성향에 따라 이 한 가지 일(기능: ergon)에 개개인이 배치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각자가 자신의 한 가지 일에 종사함으로써 각자가 여럿 아닌 한 사람으로 되도록 하고, 또한 바로 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 전체가 자연적으로 여럿 아닌 ‘한 나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네.”
소크라테스의 ‘기능’중심주의, 전문가주의는 ‘한 나라’, 즉 내부의 분열이 없는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고 위함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다시 한번 “교육(paideia)과 양육(trophē)”을 강조한다. 이 교육과 양육은 앞서 언급되었던 시가교육, 체육교육 등과는 다른, 삶의 세부적인 항목들을 포함한다. “우리가 지금은 제쳐두고 있는 많은 다른 것까지도, 이를테면 아내의 소유나 혼인 또는 출산 등, 이 모든 걸, 속담에 따라, 최대한으로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된다는 것.”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koina ta philōn)은 449c에서 다시 거론된다]
아데이만토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전적으로 수긍하면서(“저 또한 그렇게 믿는 사람들 속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세부적인 항목 만들기에 가담한다. 그들이 관여하는 것은 다양하다. “체육 및 시가와 관련해서 기존의 질서와 어긋나게 ‘혁신하는 일’(neōterizein)”, 특히 “’가락(법: nomos)의 어김(paranomia)’”에 유념해야만 한다. ‘가락’을 어기는 일이 생겨나면 그것이 “성격과 관행(관례: epitēdeumata)”에 스며들고, “이게 커져 나와서는 상호간의 계약들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이 계약들에서… 그야말로 무엄하게도 법률과 정체(政體)를 향해서 옮겨가서는, 마침내는 공사(公私)간의 모든 걸 뒤집어 엎기에 이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의 핵심을 “준법적인(ennomos) 놀이”에 두되, 이는 “말로나 문자로나 입법화”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시장 상거래의 세칙(細則)”, “치안 조례와 항만 조례”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종류의 것으로 참된 입법가가 수고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관습적으로 처리할 일들이다.
소크라테스와 아데이만토스는 수호자들의 교육과 양육에 관한 논의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법령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하며 으뜸가는 것들”을 논의한다. 그것은 “신전들의 건립과 제물들, 그리고 그 밖에 신들과 수호신들 및 영웅들에 대한 섬김… 죽은 자들의 매장과 저 세상에 있는 자들이 ‘심기가 좋은 상태에 있도록’ 이들에 대해 해야만 하는 봉사”이다. 이러한 섬김과 봉사는 “’조상 전래의 해설자(조언자, 판단자)’(pratrios exēgētēs) 이외의 다른 어떤 해설자를 따르지도, 또한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아폴론 신이 제시된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를 시작할 때 벤디스(Bendis) 여신의 축제에 ”축원과 구경”을 하러가서 “트라케 인들이 지어 보인 행렬”을 “근사”(327a)하다고 하였으나 그가 세우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행렬을 구경하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